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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호미곶과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 감성과 역사로 걷는 하루

by xavi4 2025. 7. 6.

호미곶과 노을이 보이는 사진

 

동해 일출의 경이로움을 담은 호미곶과, 1930년대 시간의 자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 포항에서 하루 만에 자연과 역사, 감성을 함께 체험할 수 있는 여행 코스를 소개합니다. 30대에서 50대 중장년층에게는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자신을 돌아보는 소중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화려함이 아닌, 깊이 있는 여정입니다.

조용한 감동이 있는 동해의 도시, 포항에서 시작하는 하루

시간이 갈수록 여행이란 단어의 무게가 달라진다. 20대 시절엔 최대한 많은 곳을 가보고, 인증샷을 남기고, SNS를 채우는 게 목적이었다면, 30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속도보다는 '깊이'에 관심이 생긴다. 40대가 되면 그 깊이가 익숙해지고, 50대가 되면 어쩌면 인생에서 ‘쉼’과 ‘성찰’이 필요함을 체감하게 된다. 포항은 그런 의미에서 중장년층에게 무척 잘 맞는 여행지다. 시끄럽지 않고, 관광지 특유의 인공적인 감흥보다는, 오히려 조용히 감정을 자극하는 힘이 있는 도시다.

이 포항 여행에서 첫 번째로 들를 곳은 바로 호미곶이다. 한반도의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이곳은, 지형적으로도 일출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거대한 손 조형물, ‘상생의 손’은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다. 하지만, 호미곶의 진짜 매력은 단지 사진에 담긴 풍경 그 이상의 것에 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볼 때, 복잡한 생각이 하나씩 정리되기 시작한다. 그동안 쌓인 피로, 감정의 소음, 미뤄둔 다짐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그것이 바로 호미곶의 힘이다.

호미곶에서 감정의 여운이 남아 있을 때쯤, 차로 20분만 이동하면 전혀 다른 성격의 장소인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이 실제로 거주하던 마을이 그대로 보존된 곳이다. 당시의 일본식 목조건물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고, 그 안에는 카페, 전시관, 체험 공간 등으로 활용되는 곳들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사진 찍기 좋은 골목일지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이 골목이 품고 있는 시간의 깊이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시간은 우리로 하여금 '역사'와 '현재'의 교차점을 걸어가게 한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포항까지는 고속철이나 자차로 3~4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다. 거창한 계획 없이도 짧은 하루, 혹은 1박 2일의 일정으로 충분한 감동을 안고 돌아올 수 있는 곳. 특히 삶의 변곡점에 있는 30대~50대라면, 이 여정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자신을 다시 만나는 시간으로 다가올 것이다.

호미곶,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에서 마주하는 새로운 나

포항의 호미곶은 지리적 의미 외에도 상징적인 무게가 있다.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이라는 사실은 단순한 관광 캐치프레이즈가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 가장 앞선 출발, 누구보다 빠른 하루의 출발점이라는 철학적 함의도 담겨 있다. 상생의 손 조형물은 왼손과 오른손이 각각 바다와 육지를 향해 뻗어 있는데, 이는 인간과 자연, 동서의 조화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른 새벽 바닷가에 선 사람이라면, 이 조형물 앞에서 왠지 모를 경건함을 느끼게 된다.

호미곶의 일출을 보기 위해선 이른 새벽, 어둠이 채 가시기 전부터 이동해야 한다. 동해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기다리는 그 시간이 결코 짧지 않다. 하지만 그 시간을 견뎌낸 자에게는 특별한 보상이 기다린다. 수평선 위로 붉은 태양이 서서히 떠오르고, 하늘과 바다, 그리고 사람들의 얼굴이 동시에 붉게 물든다. 30대에겐 앞날을 향한 다짐의 시간이고, 40대에겐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며, 50대에겐 지나온 길을 정리하고 남은 길을 계획하는 묵직한 순간이 된다.

호미곶에는 해맞이광장 외에도 볼거리가 다양하다.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은 신화적 배경을 통해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흥미로운 경험을 제공하며, 국립등대박물관은 아이들과 함께 방문했을 때 교육적인 요소도 챙길 수 있는 공간이다. 또한 호미곶 등대는 현재도 가동되는 실사용 등대로서 역사적 가치도 높다. 조용히 걷다 보면 모래밭 위로 갈매기 발자국과 파도의 흔적이 남아 있는 해변길을 발견할 수 있고, 바닷바람이 코끝을 스치며 일상에 찌든 감각을 서서히 정화시켜준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수평선을 보면 마음이 평온해진다고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선을 바라보며 우리는 스스로를 다시 정렬하고, 무심히 흘려보낸 하루하루의 의미를 되찾게 된다. 이렇듯 호미곶은 단순한 '관광 명소'가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는 장소다. 그것이 이곳이 특별한 이유이며, 특히 중장년층에게 더 깊게 와닿는 까닭이다.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 침묵하는 시간과 대화하다

호미곶에서 받은 감정의 파도를 그대로 안고 구룡포로 향하면, 이내 풍경은 조용한 골목과 낡은 건물들로 바뀐다.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는 1930년대 일본인들이 거주하던 마을로, 100년 가까운 시간이 그대로 정지된 듯한 공간이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이 거리에서는, 겉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목조 가옥 하나하나가 각기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관광객이 많은 날이면 다소 붐빌 수 있지만, 조용한 평일 오전에 방문하면 이 골목은 오히려 묵직한 침묵으로 감정을 말해준다.

중장년층 독자에게 이 거리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오래된 마루바닥, 좁은 복도, 나무창틀에 얹힌 먼지, 이 모든 것이 과거의 삶을 상상하게 만들며,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의 흐름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때로는 부당했던 역사, 침묵해야 했던 시간, 그리고 그 속에서도 살아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공간 곳곳에 남아 있다. 일부 가옥은 북카페나 갤러리로 개조되어 있어, 그 속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시간을 음미하는 여유도 누릴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이 거리를 걷는다면, 눈으로 보는 역사교육이 될 수도 있다. ‘왜 이런 마을이 여기에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설명하며, 우리 역사에 대해 가족이 함께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혹은 혼자 이 거리를 걷는 중장년이라면, 지나온 자신의 삶과 앞으로의 길을 천천히 성찰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포항은 이렇듯 조용히 다가오는 여행지다. 화려하진 않지만 묵직하다. 빠르진 않지만 오래 남는다. 바쁜 일상 속에서 놓쳤던 것들을 다시 붙잡고 싶을 때, 혹은 아무 말 없이 쉬어가고 싶을 때, 포항의 호미곶과 구룡포는 그 모든 요구를 담담하게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다. 지금 당신의 마음이 무겁다면, 혹은 너무 가벼워졌다면, 이 두 곳을 걸어보길 바란다. 당신이 잊고 있던 진짜 여행의 의미가 그곳에 있다.